정창현 / 월간 《민족21》 대표, 국민대 교양과정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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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 사후 김정은체제는 외부의 우려와 달리 빠르게 안착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김정은 부위원장은 새해 들어 '근위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방문한 데 이어 11일께는 평양의 건설현장을 시찰하는 등 최고지도자로서 공식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김 부위원장의 생일로 알려진 1월 8일에는 후계자 시절 군부대 방문 등의 장면을 담은 기록영화도 방영해 '준비된 지도자'란 선전에 나섰다. 어린 나이로 권력승계 준비가 전혀 안돼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나 권력기반이 약해 집단주의체제로 갈 것이란 외부세계의 예측과 달리 원만한 승계과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2010년 9월 28일 당 대표자회를 통해 향후 김정은 부위원장 중심의 당과 국가 운영이라는 큰 틀이 확립돼 있었고, 1994년 김일성 주석 급서 때와는 달리 유고(有故)대응계획이 서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신속한 대응과 승계가 가능했다.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김정은체제

조만간 김정은 부위원장은 노동당 총비서,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장 등의 직책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당 대표자회를 통해 '친김정은 인사'로 지도부의 인적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에 대대적인 인사이동은 없을 것이다. 김 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든 직책을 승계할 경우 단일지도체제냐 집단지도체제냐 하는 논쟁도 수그러들 것이다. 김 부위원장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등의 집단협의를 통해 정책보좌를 받으며 자신의 '유일적 영도체제'를 확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알렉산더 보론쪼프 러시아과학원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최고지도자의 유일적 지위와 최고수준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집단주의가 결합되는 형태"다. 단기적으로 김정은체제에 불안정성이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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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2012/01/25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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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이 왔다. 올해 정권교체가 될 것인지가 새해 벽두부터 모두의 관심사인 것 같다. 그동안 시민운동에 몸담았던 주변 여러 사람들이 출판기념회를 한다며 오라고 한다. 그래서 누가 정치에 나서려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자의도 있고 타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사회변화를 위해 시민운동에 몸을 던졌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운동에만 몸담아서는 생계조차 꾸려가기 버거운 사회운동 출신들이 우선 떠오른다. 그리고 자기 직업세계에서 부당한 처사를 겪으면서 제대로 뜻을 펴보지 못한 사람, 나름대로 자기 직업 영역에서 성공을 했으나 더 큰 자기실현을 하고픈 사람, 그리고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회운동의 경력을 바탕으로 제도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들 새내기 정치가들의 열정에 힘입어 정치권도 물갈이되면 좋겠다. 그런데 세상의 화두가 모두 정치로 모아지고, 사회운동 지도자급 사람들이 너도나도 총선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정치를 해야 하지만, 사회의 모든 능력있는 사람들이 모두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잘난 사람들'은 정치에 뛰어드는 현실

그런데 파트타임 시민운동을 해온 나는 정치하겠다는 사회운동가들을 말릴 명분이 없고, 모든 일을 정권교체와 연결시키는 세상의 보통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우선 40대 중반 넘어서까지 사회운동을 해서는 자신의 경력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없고, 자녀들 교육은 물론 가족의 생계조차 꾸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명박정권이  들어선 이후 공익 시민단체의 돈줄이 막히고 진보적 학자들의 연구용역조차 끊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직사회, 대학, 언론, 지역사회 어느 곳도, 뜻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소박하게 노력하여 그 영역에서 조직도 발전시키고 자기실현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대기업을 비판하지만 나는 이 점에서는 그래도 기업이 좀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에 나서기보다는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는 충고는 지극히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한국사회의 현실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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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8 2012/01/18


윤지관
/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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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체제를 종식시킨 1987년 시민혁명 이후 우리 사회는 정치를 비롯한 각 영역에서 민주화가 큰 흐름을 이루었다. 특히 선거에 의해 정권교체를 실현한 1998년을 기점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질서가 교육이나 문화의 차원으로까지 확산되는 진전이 있었다. 한국 교육에서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로 지목되어온 사학비리와 부패가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떠오르며 많은 사학들에서 분규가 발생하였고, 그 결과 대부분의 경우 비리를 저지르거나 장기간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전횡으로 물의를 일으킨 재단이사장과 그 족벌들이 퇴출되고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다. 상지대를 비롯하여 덕성여대 동덕여대 세종대 광운대 경기대 대구대 조선대 영남대 등 전국에 걸친 분규사학들은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한 관선이사 제도를 통해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안정은 정착되지 못하고 대학들은 다시 혼돈에 빠지게 된다. 1987년체제가 사회민주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과제로 한 행보를 시작했다면,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등장한 이명박정권은 그 모든 성과와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6월 시민혁명의 정신을 훼손했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퇴행과 그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였지만, 직격탄을 맞은 곳이 바로 이 사학들이다. 3년 전 주로 친정부적 인사들로 구성된 제2기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정상화'라는 미명 하에 비리 등으로 퇴출되었던 구(舊)재단을 차례로 복귀시켜 상지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분규당사자들이 다시 대학운영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교수와 학생 등 대학구성원들은 교육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사학비리척결을 위한 국민행동'을 결성해 이에 항의해왔고, 여러 대학에서 점거농성이 이루어지는 등 갈등이 재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학 문제는 '일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 뿌리깊은 사학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과거 각 대학은 참혹한 학내분규 끝에 구재단을 축출할 수 있었지만, 교육현장에서 그 악몽을 되풀이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현 정부의 레임덕이 깊어감에 따라 사분위의 막무가내식 구재단 편들기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이미 구재단이 복귀한 곳에서는 과거의 전횡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심각한 분규가 예상되는 곳들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새 정권의 창출과 더불어 시작될 '2013년체제'가 1987년체제의 복원이나 개선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변화를 이룩하려면 사학 문제에서도 발본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흔히 오해하듯이 '일부' 사학만이 아니라 한국 교육 전체의 핵심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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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8 2012/01/18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을 바라보며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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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이다. 민주통합당의 대표선출 선거인단에 참여하는 시민수가 65만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합만 있고 혁신은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이변이 일어났을까? 반은 의심에, 반은 놀라움에 던지는 질문이다. 우선은 한국노총, YMCA, 정봉주 팬클럽, 노무현재단, 백만 민란, FTA무효화 국민행동, 세금혁명당 등의 사회단체들과 새로운 대항미디어 '나꼼수' 등이 적극 개입한 결과다. 정치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그 힘을 깨달은 일반인의 자발적 참여도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별 시민의 자유로운 참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첫번째 요건이 표현과 결사의 자유인 점을 감안하면 '조직'의 참여는 해가 아니라 득이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이른바 강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다.

다양한 결사체들의 존재와 참여는 민주주의에 도움이 된다. 이 사실은 토크빌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바다. 조직 네트워크가 옅어지고 개인으로 고립되면 참여가 줄어들며, 그 질도 수동적 참여로 떨어진다. 그 결과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는 개인민주주의(personal democracy)로 전락하고 만다. 긴즈버그의 지적이다. 개인민주주의에서는 이슈그룹이 시민 없는 시민단체로서 미디어와 의회를 활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과잉표출하게 된다. 이때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여론조사다. 한 예를 살펴보자. 1947년 미국에서는 뉴딜체제의 핵심법안인 노동관계법 개정이 이슈로 떠올랐다. 파업권의 제한 등을 담은 개정법(Taft-Hartley Act)으로 손해를 보는 노동조합이 낙선운동 위협을 하며 강력히 저항했다. 의회에서는 머뭇거렸지만, 이때 돌파구를 열어준 것이 여론조사였다. 이 법에 대한 찬반을 다음 선거의 준거로 삼지 않겠다는 여론이 다수를 차지하는 조사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그러자 의원들이 용기를 내 법안처리에 나서 이 법을 통과시켰다. 여론조사를 통해, 공통의 이해를 갖는 노동자가 아니라 고립된 개인의 의사로 파편화된 것이다. 이런 위험성을 갖는 여론조사가 우리 정치에서 극성을 부렸던 것을 기억하면 조직의 참여는 대단히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기성 정당의 대담한 정치기획이 필요한 때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정당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고 단언했다. 정당의 중요성을 표현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일차적 이해에 머무는 것이다. 사실상 정당의 이끌어 가는(leading) 역할을 지적하는 말로 읽는 것이 좀더 깊이있는 해석일 것이다. 정당은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고 정립하는 기능을 한다. 동시에 대안을 모색하고 선택해서 간명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계도기능도 해야 한다. 따라서 정당은 대중을 추수하면서 동시에 끌고 가야 하는 모순적인 이중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셈이다. 그간 우리 정당은 대중을 계도하는 기획에서 매우 무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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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1 201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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