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아 /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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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줌도 안되는 세력의 거대한 음모에 좌우된다는 설정, 엄청난 사건들이 드러나지 않은 배후에서 비롯되었음을 하나하나 파헤치는 줄거리는 익숙한 플롯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흥미를 돋운다. 이런 거대 음모를 틀로 삼은 영화에서 가장 전형적인 음모의 주체는 정부기관의 권력자이다.

그러다 가끔은 <에일리언>이나 <아이 로봇>에서 그렇듯이 주모자가 '회사'로 지칭될 때도 있다. 사실상의 국가권력 혹은 그 이상을 획득한 하나의 거대 기업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구도 또한 식상해졌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두 유형을 뒤섞어 정부기관과 기업을 다 아우르는 '거대 음모조직'이 등장했다. 여기서는 정치와 경제, 권력과 돈 사이의 일말의 경계도 해소되고 오로지 해당 조직의 이해관계만이 절대적인 목표이자 기준으로 작용한다.

한국판 음모론 만들어낸 '신종 법치'

이런 설정에서 거부할 수 없는 리얼리티가 느껴지는 것이 요즈음의 한국사회이다. 심지어 그 거대조직의 이름도 공공연히 거론된다. '대한민국 1%.' 그럼에도 이런 사태는 박진감 넘치는 음모론의 소재가 되어주지는 않는다. 모름지기 음모란 적발과 폭로에 무너지는 것을 그 운명으로 하여 성립한다. 다시 말해 최소한의 정의를 위한 기본적인 법적·도덕적 씨스템을 배경으로 해서 그 음습한 본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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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201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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