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는 한미FTA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손열
 |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며칠 전 한·EU FTA 1차 공식협상이 끝났다. 지난 14개월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어온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지 불과 한달 만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만큼이나 경제규모가 큰 EU와의 초대형 FTA를 또다시 추진할 준비와 여력이 있다면 경탄할 일이다. 현재 캐나다, 인도, 멕시코와 공식 협상중이고 중국과 공동연구를 진행중인 사정을 고려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엄청난 소모전을 치러온 한미FTA 찬반 양진영은 여전히 한치 물러섬 없이 대립하고 있다. 미하원 자문위원회가 협정안을 정밀 검토하여 일부 재협상안이 나오는 속에서 우리는 검토는커녕 협정안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 시점에서 한미FTA 찬반논쟁을 접어두고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한미FTA가 주는 교훈이다. 한국에게는 EU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대형 FTA 협상이 기다리고 있다. FTA 후발국의 처지에서 지난 일년 한미FTA 협상과정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되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차분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 점검이 끝난 이후에 EU와의 FTA를 본격적으로 추진해도 결코 늦지 않다. 
 
FTA란 통상협상은 대외협상과 대내협상이란 양면게임을 치르는 작업이다. 특히 대내협상이 체결에 대단히 중요한 관건임은 과거 한·칠레FTA 협상, 한일FTA 협상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과거 협상단의 대내협상 부족을 격렬히 비판했던 이익집단이나 시민사회단체는 한미FTA 협상에서도 여전히 비난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상대국과의 협상과정에서 국내 이해당사자와의 협상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FTA 협상, 비밀주의를 넘어 내부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첫째, FTA 협상상대국 선정과정에서의 비밀주의이다. 선진적 관행을 보면 정부는 국내 이해당사자와의 협의를 거쳐 상대국을 선정한 후 협상개시를 선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후 상대국과 협상과정에서 국내행위자들과의 협상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 협상상대국 선정과정에서 국내 이해당사자와의 협의가 생략되었을 경우, 차후 대외협상과정에서 국내협상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정부는 한미FTA 협상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깜짝쇼 하듯 내놓았고, 차후 국내 이해당사자들을 협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교정과 계몽의 대상으로 보아왔다. 한미FTA 체결지원위원회의 활동이 그러하였다. 한·EU의 경우 역시 당초 예정된 공동연구 없이 곧바로 공식협상에 진입했으면 형식적인 공청회 한번으로 넘어갔다. 민주적 정책결정은 대단히 중요한 관건이다.

물론 정부가 국내협상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나서더라도 국내 이해당사자들과 효과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사회집단이 잘 조직화되어 있어야 한다. 즉 부문별 대표성을 지닌 파트너가 존재할 때 의미있는 협상이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사회의 결사능력은 원활한 대내협상에 중요한 관건이다. 우리 정부는 결사능력이 낮은 사회세력과 협상을 해야 하는 힘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정부 스스로도 거버넌스 능력, 즉 다양한 사회세력을 조정, 관리하는 능력의 한계를 노정해왔다.

요컨대 우리는 사회는 결사능력 부족, 정부는 거버넌스 능력 부족이란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FTA처럼 대단히 많은 이해당사자가 개입되는 정책이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수행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장기적 과제를 풀어야 한다. 물론 이들을 풀기까지 차후 FTA협상을 유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문제들을 명확히 인식하고 교정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념과 정서 과잉을 넘어 현실적인 로드맵을 

둘째, 한미FTA 대립에서 보듯이 이념과 정서의 과잉이 적절히 통제되어야 여느 선진국처럼 이득과 손실을 계산하고 손실을 적절하게 보상하는 협상의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념과 정서의 과잉은 FTA의 의의에 대한 이성적 판단에 의해 제어되어야 한다.

FTA는 문자 그대로 자유무역을 하자는 것이다. 자유무역, 즉 시장기능에 대한 일정한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 한 FTA정책은 성립될 수 없다. 이런 전제 없이 FTA를 추진하는 것은 이를 중상주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 즉 상대는 더 많이 열게 하고 자신은 더 적게 열겠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또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 이 시대에 통하는 전략이 아니다. 한편, 반세계화론자라면 모든 FTA를 거부해야 한다. 시장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화시대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지속가능한 반세계화 생존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만일 한미FTA의 반대가 FTA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개방의 수순에 대한 반대라면 일정한 합리성을 갖는다. 우리 사회가 대형 FTA를 감당할 만한 준비가 덜 되어 있다면 말이다.

이런 입장을 설득적으로 제시하려면 차가운 이성적 판단과 계산, 그에 근거한 현실성있는 로드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미FTA 공방이란 양극화된 이념·정서의 지형 속에서 우리는 정작 필요한 장기비전 구상, 차가운 손익계산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였다.

FTA는 독약인가 만병통치약인가

끝으로, FTA의 가치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한미FTA에 있어서 보수진영의 ‘개국 대 쇄국’론, 진보진영의 ‘자주 대 종속’론은 공히 현실을 과대포장하고 있다. 미국과의 FTA로 팔자 고친 나라도 망한 나라도 없다. 시장개방 없는 세계화는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시장개방은 대세지만 무역은 부를 창출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협정체결 직후 다수 언론, 방송매체들이 앞다투어 한미FTA를 제2, 제3의 개국으로 의미부여한 것은 분명 과장된, 나아가 시대에 뒤진 행태이다. 한미FTA가 개방으로 우리 사회에 강고한 소수 기득권과 생존권을 공히 파괴할 수 있는 결정이란 점에서 획기적 사건임에는 틀림없으나, 국운을 결정하는 획기적 사건과는 거리가 있다.

이런 사고는 20세기 통상국가(trading state) 모델을 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유럽의 경우에서 보듯이 시장개방이 반드시 사회복지의 축소를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또는 미국식 모델로의 수렴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FTA 전도사들의 말처럼 개방으로 인해 해외투자의 유입과 경쟁력 향상이 크게 촉진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양질의 노동력, 고수준의 인프라와 지식수준, 통치능력이 갖추어지고 그 위에서 개방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얻어진다. 번영의 21세기 모델은 통상을 넘어 지식을 축적하고 지구적 수준에서 산업, 금융, 기술, 문화적 네트워크를 촘촘히 짜 부가가치를 높이는 국가이어야 한다.

한·EU FTA,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추진하자

요컨대, 한미FTA는 국내협상 부족 혹은 민주적 정책결정의 결여란 문제점을 노정했고, 극단적인 찬반대립 속에서 FTA의 효과에 대한 이성적 계산을 저해했으며, 통상에 집착하는 20세기적 사고를 강화시킨 유산을 남겼다. 한-EU FTA는 이상의 교훈을 새기면서 차분히, 천천히 추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조속한 체결을 추진하는 자세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제도개혁의 문제이다. EU와의 협상에서 대내협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이를 공식협상 이전-중간-이후의 세단계로 나누어 좀더 정교한 제도틀을 모색해야 한다. 협상 이전단계에서는 현행 공청회 개최 수준을 넘어 상시적인 민관 정책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고, 협상 중간단계에서는 대외협상능력 제고를 위한 민간의 협조체제가 요구되고, 협상 이후는 협상안에 대한 정밀한 평가를 위한 (즉 대통령의 비준 이전단계에서) 민관 심의체제가 필요하다.

둘째, 이러한 제도 만들기 노력은 거시적 수준에서의 기왕의 FTA전략과 로드맵 재고, 그리고 관념과 철학적 비전에 의해 지지되어야 한다. 세계화에 기반하면서 사회적 가치와 시장경쟁을 함께 담는, 통상으로부터 지식으로의 21세기 자본주의 모델을 모색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이 점에서 EU국가들은 우리에게 협상파트너인 동시에 세계화의 파도를 넘는 모델의 고려대상이다.

2007.5.15 ⓒ 손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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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4] 지속가능한 개방전략을 모색하자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올해 초 한국과 미국이 공식협상의 개시를 선언한 한미FTA(자유무역협정)가 우리 사회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민중진영은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한미FTA 반대전선으로 결집하고 있고, 한미FTA 추진세력들은 개방과 쇄국의 이분법을 내세우며 이를 몰아붙이고 있다. 한미FTA는 국민들에게 양자택일적 판단을 요구하는 기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구도는 적어도 일차적 협상시한이라고 할 수 있는 내년 봄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개방은 항상 논쟁과 갈등을 불러왔다. 한국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10위권에 이르고, 이 성과가 세계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는 점에서, 개방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이 정책 논쟁의 차원을 넘어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로 이어지는 퇴행적인 상황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한미FTA가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칠 심각한 구조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합의가 결여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협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대로 간다면, 경제적으로 한미FTA의 체결은 미국식 표준의 수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써비스산업의 발전에 한국경제의 활로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이 분야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미국과의 FTA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외교적으로 한미FTA는 한미동맹이 경제동맹으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측에서는 한미동맹을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에서 지구적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적 혁신의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혁신의 방향이 미국식 모델의 무분별한 수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유럽식, 일본식 그리고 또다른 성장 및 개방 모델이 가능하며, 미국식 모델은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관계의 안정적 발전은 중요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강화만을 강조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는 다른 동북아국가들과의 관계를 긴장국면으로 몰고 갈 것이며, 현실이 웅변하듯이 부시행정부와의 ‘지구적 파트너십’이란 결국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전쟁에서의 동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사회통합적인 경제발전, 미국과의 수평적 관계, 균형있는 대외관계를 원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등장했다. 이러한 참여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결여한 사명감과 근거가 불충분한 주장들로 한미FTA를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이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공식협상이 곧 진행되겠지만,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협상의 타결을 서둘러서는 안된다.

또한 한미FTA 반대투쟁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각종 여론조사들을 보면 다수 국민은 개방에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한미FTA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민들은 특히 농업 및 영화시장 등에 한미FTA가 미칠 단기적 충격과 경제씨스템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우려하지만, 개방이 한국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FTA 반대투쟁이 개방반대 담론의 틀에 갇히게 되면 국민들의 지속적인 지지를 획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 발전모델을 둘러싼 싸움에서도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개혁세력은 최소한 한미FTA 협상이 내년 초라는 시한 내에 서둘러 마무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을 모으는 동시에, 개방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의 출발점으로 다음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국내적으로 개방은 복지정책 정비 및 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개방 후유증에 대한 보상 차원이 아니라 사회발전의 기본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둘째, 남북 경제통합의 진전을 고려하고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개방이어야 한다. 남북 경제통합은 내부시장의 활성화와 동북아 차원의 지역적 협력을 기초로 개방과 국내개혁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셋째, 국제적으로 개방과 경제통합은 다양한 지역협력체에 의해 관리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방전략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개방의 선택도 적절한 복지와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훨씬 많은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개방에 대한 저항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통제하기 어려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걸음이 다소 더디더라도, 장기적으로 복지, 민주주의, 지역협력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개방전략이, 진정한 의미에서 ‘현실적인’ 방도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내부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미래를 선택할 권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개방문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 계간 [창작과비평] 2006년 여름호, 머리말 중에서

2006.05.23 ⓒ 이남주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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