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파업농성과 민주화 20년의 한국사회  

노중기 | 한신대 교수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홈에버, 뉴코아 매장 점거농성투쟁이 전국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육아와 가사노동 부담까지 이중으로 짊어진 40대 주부노동자들이 절규하고 있다.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의 이른바 '비정규노동자 보호법안'이 시행된 첫날, 바로 그 '보호법안'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보호법안'이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대규모 정리해고, 외주 용역화로 나타나는 기만적인 현실을 고발하는 저항의 함성이었다.

그들은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하루 여섯시간 이상 서서 정신없이 바코드를 찍고 쉴새없이 손님들을 상대하는 댓가로 80만원도 안되는 임금을 받았다. 또 몇년 이상 같은 직장에서 일했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 같은 신세를 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보는 대로 헌법에 명시된 노동기본권을 요구하면 당장 공권력 투입, 구속수배가 떨어지는 노예노동이 그들의 현실이었다. 천민자본, 종교재벌 이랜드 사주가 십일조 헌금으로 교회에 내는 130억 원의 돈에는 그들의 땀과 고통, 그리고 직업병이 모두 담겨 있었다.      

지금 이 분노와 함성은 사실 이랜드 노동자들만의 목소리는 아닐 것이다. 지금 이랜드 노동자의 투쟁은 우리 사회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875만 비정규노동자들의 고난에 찬 삶과 분노를 대변한다.  

'비정규직 보호법안' 과연 누구를 보호하는가

비정규노동자들의 저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정부 이래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목숨으로 그 현실을 고발한 바 있었다. 약 먹고 목 매달고 분신하여 저항한 노동자들이 여럿이었다. 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민주정부의 감옥에 갇혔으며, 포항 건설노조의 비정규노동자, 하중근 열사처럼 싸우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노동자도 있었다. 또 삭발투쟁, 농성, 삼보일배, 거리시위 등 온갖 방법으로 500일이 넘게 싸우고 있는 KTX, 새마을호 여승무원 해고노동자들은 비정규 현실의 살아 있는 증거이다. 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30여명이 서울역 앞 땡볕 아래에서 단식농성중이다.

민주화 20년인 2007년, 한국사회에 과연 민주주의가 존재하는가? 노무현정부의 자화자찬, '참여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디쯤에 와 있는가? 그 잘난 '민주화 개혁세력'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과 투쟁에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쉬운 답이 들어 있다. 이랜드 투쟁은 우리 민주주의의 현재를 포착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투쟁에 비친 참여민주주의 현주소

먼저 이랜드 투쟁의 도화선이 된 소위 '비정규노동자 보호법안'을 만든 노동부장관은 1987년 민주화투쟁의 주역이었고 지금 민주화유공자이다. 그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엄혹한 노동탄압에 항거한 몇 안되는 인권변호사였고 1987년에는 5공정권의 노동자 탄압에 저항하다 구속된 이력까지 갖고 있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 재판에서는 구속된 파업노동자들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훌륭한 최후변론으로 주위를 감동시킨 뛰어난 노동전문가였다.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를 '불법과 좌경'으로 몰아치던 노태우·김영삼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불법쟁의'의 실체적 정당성을 설파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런데 민주화된 지금 이랜드 노동자들을 향해 '법과 원칙' 운위하며 '불법파업에 대한 공권력투입' 협박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랜드 사태의 최고책임자는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노동자들의 표를 모아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도 장관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인권변호사이자 노동전문가, 민주화투사였다. 또 구로동맹파업의 여파로 구속된 창원의 통일중공업 노조위원장을 변론한 것도 닮은꼴이다. 노동자대투쟁 이후 파업선동으로 구속되고 노태우정권의 노동자 탄압에 대해 변호사이자 국회의원으로 이른바 '불법'의 실체적 정당성을 주장했던 것까지 꼭 같다. 다만 훨씬 달변이어서 말이 많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랜드 파업에 대해 어떤 말을 할지 너무도 궁금하지만 도통 말이 없다.

그 시절의 민주화투사들은 어디로 갔나

요컨대 가장 대표적인 민주화투사, 노동인권 전문가들이 국회의원,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 비정규노동자들을 불법으로 몰고 탄압하는 현실, 그것이 민주화 20년 한국의 민주주의이다. 또 이것이 대선을 앞두고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이른바 '386들'이나 '대선주자들'이 요란하게 외치는 '민주개혁세력' 구호의 실체인 것이다. 그 '민주와 개혁'은 노동자, 특히 비정규노동자에게는 선거 때만 쓰이는 편리한 물건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구속되어도 오불관언이며 국가권력이 노동자를 때려죽여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민주와 개혁'이 도통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비정규노동자들, 그것도 가장 온건하고 힘없는 주부 여성노동자들이 자기들을 보호해준다는 '보호법안'에 구속을 불사하고 온몸으로 항거하는 현실이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이다. 이 웃지도 못할 코미디 같은 일은 참여민주주의와 법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장관과 대통령과 386 민주개혁세력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말이다. 정당성을 가진 민주정부의 합법적인 권력행사 아니냐고.

당신들의 민주주의

비정규노동자들은 이랜드 파업, KTX 투쟁으로 이미 대답했다.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 파리 목숨의 고용불안, 그리고 노동기본권에 대한 국가폭력을 용인하는 그런 민주주의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이다. 또 비정규 노동을 더욱 확산시킬 악법을 '보호법률'로 왜곡하여 강제하는 그런 민주주의는 투쟁으로 거부한다고 답한 것이다. 나아가 전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구정당과 힘을 합해서 한미FTA, 이라크파병, 사립학교법 개악과 노동법 개악을 '합법적으로' 밀어붙이는 그 잘난 '민주와 개혁세력'은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외친다. 이 땅의 절반이 넘는 국민인 노동자, 그중에서도 비정규노동자들은 말한다. '그것은 당신들의 민주주의일 뿐이다'

2007.7.17 ⓒ 노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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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노동기업 이랜드 반대 7/25/2007 3:32:49 PM
박성수 십일조 130억의 진실공방...
십일조 130억원이라는 논란이 가열되고 있나 봅니다. 여기저기 블로거 스피어 사이에선 이랜드쪽 회사 살리기 운동(?)의 여파로 혼란하신 분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먼저 "이랜드 '130억 십일조' 설의 진실(http://www.cbs.co.kr/nocut/show.asp?idx=561919)" 이란 기사가 나온 반면, 좀더 의증이 많이 간다는 "이랜드 박성수...
'비정규직 철폐'는 대안이 아니다   

박홍주 | 서강대 여성학 강사

2006년 11월 30일, 불과 16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비정규직 관련법은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격렬한 대립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법안의 통과에 의의를 두는 쪽은 노사정위원회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뿐이다.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 시민사회·노동단체는 이 법안이 비정규직 보호가 아니라 양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법안 철폐를 위한 총력투쟁을 선언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비정규직 자체의 완전 철폐를 위한 투쟁을 결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비정규직 철폐'라는 원론적이고 선언적인 투쟁만으로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비정규직화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기업이 이윤획득을 위해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것이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는 노동자에게도 생애주기에 따라 필요한 측면이 존재한다. 실제로 모든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일하는 나라는 지구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보더라도, 비정규직 그 자체가 문제라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관련 법안이 표류하던 지난 1년간 비정규직 노동자가 30만명이나 늘어날 정도로 그 규모가 급속하게 커지고 있으며,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차별이 날로 심화되면서 새로운 신분제도로 고착화된다는 점이다. 지난 9월에는 공공부문에서조차 주변업무를 외주화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공표되었는데, 이는 한국 비정규직 노동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 대표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이 '사유 제한 없는' 비정규직 사용과 '2년 후 정규직화'라는 기간 제한에 합의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수많은 시민사회·노동단체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으며, 특히 비정규직의 70%를 차지하는 여성계는 더욱 완강히 반대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을 날치기 당했다"며 견고한 노동시장 차별에는 손을 못 대는 무디고 형식적인 '차별 금지' 규정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여성노동계는 외주화의 확산이라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하면서 '2단계 보호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현실화를 주장한다.

종래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에서 한발 더 나아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업무 내용이 다르더라도 직무평가를 통해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comparable worth) 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현행 비정규직법은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노동현실에서 직무·직종이 성별에 의해 분리되는 경우가 많고, 기업 규모에 따라 임금 격차가 극심하기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법안은 애초부터 정규직 업무와 파견직·계약직 등의 비정규직 업무가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는 경우에는 차별을 주장할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2년 내에서 언제든 비정규직으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고 또 손쉽게 해고할 수 있다. 게다가 KTX 승무원의 사례에서 보듯, 주로 여성들이 맡는 일을 '주변업무'로 간주하여 외주화하고, 남성들의 업무를 '핵심업무'로 규정해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등 성차별이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여성과 남성의 노동을 분리하고 성차별적 통념에 의거해 여성의 일을 평가절하하는 우리 사회에서, 동일한 업무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따라서 여성 노동의 가치를 남녀고용평등법에서 명시하듯이 '객관적이고 성차별적이지 않은 표준체계와 가치척도'로 평가할 수 있는 씨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관련법안 제정 등 강제적인 방안 마련에 치중할 뿐, 동일노동과 동일가치노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실질적 기준이나 방법, 그리고 이를 전담할 전문인력 확보에는 무관심하다. 따라서 설령 당장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반영하여 비정규직 법안을 개정한다 해도 이를 현실적으로 집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런 평가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쪽도 적지 않은 형국이다.

캐나다에서는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직업별로 세분화된 직급·직종 체계를 갖추고 직급이 같은 계약직과 정규직에게는 동등한 임금수준을 보장한다. 휴가나 연금 등의 복리후생에서 차이가 나지만, 임금만을 놓고 본다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임금이 조금 높은 편이다. 유급휴가가 제약된 계약직의 현실을 감안해서 정규직의 한달 3일의 병가에 맞먹는 임금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일한 일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이 '동등'할 수 있는 것은 캐나다 정부가 10년 동안 직무평가와 이에 기반한 표준임금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덕분이다. 또한 이를 토대로 '능력주의'에 입각해 여성과 소수자의 평등한 노동권을 보장하는 '적극적 조치'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철폐를 위해서는 비현실적인 '비정규직 철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안적 원칙을 확인하고 나아가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2006.12.19 ⓒ 박홍주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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