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영어교육안, 무엇이 문제인가  

신경구 / 전남대 영문과 교수

2008년초 우리나라를 몰아치는 화두는 단연 '영어몰입교육'이다. 똑같은 현상이 1995년에도 작은 규모로 있었다. 김영삼정부가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실시하기로 했을 때다. 그때도 2년 뒤부터 실시했고, 현재의 계획도 2년 뒤부터 실시된다고 한다. 그때도 많은 전문가들이 설득력있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으나 결국은 실시되었고, 지금도 더욱 설득력있는 반대가 제시되고 있으나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초등학교 영어공교육으로 영어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했으나, 현실적으로 4조 이상의 사교육시장을 확장시켰다. 새 정부도 공교육으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나, 이미 영어 사교육시장이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 영어교육에 관한 한 우리는 어리석은 국민으로 보인다. 새 정부의 영어교육 방침에 국민의 절반 이상이 몰입되어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수이기는 하나 영어몰입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통찰력있는 지적도 있었다. 이를테면 윤숙자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인수위의 주장과는 다르게, (그럴 수도 없지만) 아무리 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잘 한다고 해도 영어가 중요하게 간주되는 한 사교육비의 증가는 불을 보듯 환한 일"이라고 예상했으며, 박거용 교수는 "학생들이 영어로 말하기, 듣기, 쓰기 등을 하려면 영어 사용시간이 지금보다 몇배는 늘어야 하는데 학교에서 영어만 배울 수는 없지 않느냐. 새 정부의 영어교육정책은 '탁상행정'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김흥숙 시인은 "세상엔 영어보다 중요한 게 많고 학교는 영어 말고도 가르칠 게 많다. 우선 우리말을 제대로 하는 법을 가르치고, 우리가 누구인지 가르친 후에, 영어를 가르쳐도 늦지 않다. 언어는 그릇이며 담을 게 없는 그릇은 쓸모가 없다"면서 우리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영어몰입교육

새 정부의 '획기적인' 영어교육정책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이미 온 국민을 영어광풍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이와 아울러 다음과 같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첫째, 교육현장에 대한 고려가 없다. 토목공사는 한두해에 마칠 수 있지만, 교육과 문화는 그럴 수 없다. 몰입교육을 2010년부터 실시하기 위해서는 우리 현실에 맞추어 관련 교과서를 만들고 교사를 재교육시켜야 한다. 2년에 3,000명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전국 모든 대학의 영어 관련학과를 동원해야 하는데, 교사교육은커녕 자기 대학 학생들에게 영어를 제대로 교육할 대학이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약방의 감초처럼 외국인 강사를 들여오면 된다고 주장하나, 외국인 강사로 영어교육이 완벽하게 성공한 사례를 들어본 일이 없다. 한국의 교육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국인 강사도 많고, 외국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학교현장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교사에 대한 수준있는 교육과 함께 합리적이고 효율성 높은 교과운영이 필요한데, 이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둘째, 문화발전에 장애가 된다. 문화는 언어이다. 2000년 전후에 불기 시작한 한류는 젊은 세대의 창의력에 바탕을 두었다. 영어바람에 편승하여 영어를 동경하고 우리말을 소홀히 생각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우리말에 대한 감수성이 둔해지고 결과적으로 우리 말과 문화가 숨이 죽고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과 재능을 개발해야 우리 문화가 꽃필 텐데, 영어를 못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을 잃고 자기의 특성을 개발하지 못할 것이다. 영어바람의 강도에 정비례해서 우리 문화의 몰락도 앞당겨질 것이다.

셋째, 경제손실이 크다. 1997년 초등학교 영어교육이 실시되면서 영어 사교육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져, 2000년에는 영어교육비가 8조원에 이르렀다. 작년 7월 3일자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영어교육 비용은 현재 약 15조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영어가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면서, 공교육비 사교육비로 필요 이상의 돈이 투입되고 있다. 국가적 자원이 적절하게 배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비용과 달리 영어교육 비용의 절반가량은 음으로 양으로 해외로 유출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현재 10만명이 넘게 해외연수를 가고 있음을 고려할 때, 한사람당 1,500만원씩만 잡아도 1조 5천억원이 해외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인수위의 영어몰입 교육정책은 이를 더욱 부추길 것이다.

넷째, 국민을 계층화하고 국민간의 의사소통을 막는다. 홍콩 등의 지역에서는 영어가 사회적 계층 상승의 수단이 되면서 영어격차(English divide)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영어능력이 곧 사회계층의 기준이 될 것이다. 영어가 강조되는 이유는 바로 국제사회에서 의사소통을 잘하려는 것인데, 나라 안에서는 영어 사용이 국민 사이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키거나 어렵게 할 것이다. 그동안 일본이나 우리나라의 경제가 빠르게 발전한 것은 같은 언어를 쓰는 일체감과 함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좌우할 통상교섭본부장이 한국어로 국회보고를 못해 무안당한 일이 있었는데, 머지않아 그 반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몰입교육이 실시되면, 그동안 세계적으로 1, 2등을 다투던 한국 학생들의 수학능력은 하위권으로 밀려날 것이다. 대학에서 원어강의가 늘어나면서 전문분야에 대한 이해수준이 크게 떨어질 것이고, 결국은 우리 산업현장에서 고급인력을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소수의 고급인력은 한국어보다는 영어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부하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아지고, 기업의 효율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대학교육 개혁과 좋은 교사 양성

문제점은 이렇게 심각한데도 이에 대한 처방은 쉽지 않다. 기계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관련 당사자들 즉 학생, 학부모, 교사, 정책과 행정 담당자 등이 합의하고 이해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해가 없으면 선의가 왜곡되고 좋은 정책이 잘못된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현재 인수위는 선의에서 이런 정책을 내놓았을지도 모르지만,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욱 국민적 합의를 얻어내기가 어렵고, 그래서 더 많은 문제를 양산할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 밀착한 다음과 같은 대안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대학교육을 바꿔야 한다. 영어교육정책의 초점은 주로 중고등학교에 한정되었다. 이는 중고등학교 교사에게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시가 형식적으로나마 먹혀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작 교육개혁의 시작은 대학이 되어야 한다. 대학 영어교육 개혁의 시작은 영어 관련학과의 역할 강화와 개혁이 따라야 한다. 단순한 양적 팽창은 질적인 개혁을 가져오지 못한다. 이를 합리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조치가 강구돼야 한다. 대학교육이 바뀌지 않은 채 영어교육을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정부의 영어 관련정책이 초중등학교에만 집중된 것이 중요한 실책 중 하나였다.

다음으로 좋은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대학교육의 개혁이 이뤄져야 교사의 양성이 가능하다. 이 일에는 적어도 6년이 소요된다. 대학 학과를 바꾸는 데 2~3년이 걸리고 좋은 교사를 교육하는 데 4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어교육 강화는 새로 확보되는 우수교사 수에 비례해야 한다. 좋은 교사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영어교사 면허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의사 면허제와 같은 제도로서,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적용하며 학원이나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려면 꼭 필요한 자격증이 되도록 해야 한다. 면허제는 사교육시장의 강사들을 공교육으로 편입할 때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필요한 만큼 영어를 가르치는 사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영어의 사회적 중요성을 낮추는 것이다. 영어가 대학입학과 취업에서 인재평가의 잣대가 되는 한, 영어는 필요 이상으로 대접받게 된다. 즉 수단인 영어가 목표가 되는 한, 역설적으로 영어를 잘할 수는 없다. 대학입시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낮춰야 한다. 영어전공이 아닌 분야에서 영어강의가 많은 대학에는 지원금을 삭감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영어가 꼭 필요한 업종과 직종에서는 보너스를 주면서라도 우수한 영어인재를 쓰도록 지원하되, 영어가 필요 없는 직종에서 영어를 진급이나 입사에서 평가의 잣대로 삼는 기업에는 세금 등에서 불이익을 줘야 한다.

이제 영어는 지배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지배계층 자신들도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서 온 국민을 영어제국의 신민으로 영어에 복종케 하고 있다. 평생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직종에서도 영어를 요구하기 때문에 이제 모든 국민은 영어의 노예가 돼버렸다. 영어제국의 관료들과 정치지도자들은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을 늘리고 고등학교에서 영어몰입교육을 밀고 나갈 것이다. 그 결과는 의도한 바와는 정반대가 되어,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 등 경제·정치·문화적으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며, 이는 고스란히 우리의 자손들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대학교육 개혁과 좋은 교사 양성을 통해 영어교육의 질을 높이고 영어의 사회적인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정책적인 조치가 있어야 하며, 정부에 이를 강제할 수 있도록 의식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08.2.12 ⓒ 신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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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영어강의를 향한 쓴소리   

김명환  | 서울대 교수

지난달 미국 댈러스에서 이민생활을 하던 한국인 부부가 폭우와 엉터리 표지판 때문에 차가 강에 빠져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일부 국내 언론은 정확한 취재도 없이 이 사건을 희생자들의 영어가 서툴러 구조요청을 제대로 못한 탓으로 보도하는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유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오보는 한국사회가 영어에 얼마나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지난 4월 인터넷 상의 '토플대란'은 미국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기 위한 영어능력을 측정하는 시험 응시자의 80%가 유학 준비생이 아니라 특목고 진학이나 대학입학시의 혜택을 겨냥한 초중고생이며 수험료가 연 16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조기 영어교육과 해외어학연수, 조기유학과 기러기 아빠는 어느덧 한국사회의 낯익은 풍속도로 자리잡았고,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3학년 아닌 1학년부터 실시하는 방안이 나오기도 한다. OECD 국가 중 GDP 대비 사교육비 지출이 최고이며 초중등학교까지 포함할 경우 미국 유학생 수가 인도나 중국을 앞질러 당당히 1위인 대한민국의 사교육 영어시장이 얼마나 큰 규모일지는 가히 짐작할만하다.  

영어광풍 부추기는 대학 영어강의의 실상

그야말로 영어광풍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그런데 일부 상위권 대학들이 이런 흐름을 바로잡기는커녕 부추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한 후 갓 대학에 자리잡은 한 신임교수는 학기당 한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계약서 상의 의무 조항을 어겼다가 낭패를 겪었다. 그는 첫 학기 담당과목을 모두 우리말로 강의하다가 경고를 받았고 다음 학기에 두 과목을 영어로 진행해야 했는데, 그가 유학한 나라는 불행하게도 영국이 아니었다. 선생의 영어능력이 모자란 상황에서 수업진행이 원활할 리 만무하고, 학생들도 영어로 하는 철학수업을 따라갈 능력이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이 어이없는 사례에서 보듯이 요즘 우리 대학의 영어강의 관련 정책이 과연 고등교육기관에 걸맞은 철학 위에 서 있는지 의문스럽다. 한 명문 사립대는 몇년 전에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 신임교수가 모든 과목을 영어, 혹은 해당 원어로 강의하도록 강제했고, 그럼으로써 앞으로 전체 개설과목의 60%를 영어강의로 바꾸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대학 외에도 신임교수에게 영어강의를 의무로 부과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기존 교수에게도 영어강의를 의무화하여 영어강의 100% 달성을 목표로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미국 유학 출신 교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우리 학문의 편향성은 심화되게 마련이다.

학문의 대미편향과 영어학습에 매몰되는 대학교육

물론 영어강의를 확충하려는 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현대 세계에서 아직도 달러가 기축통화이듯이 오늘의 국제어는 영어임에 틀림없고, 수준높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인력에 대한 수요는 매우 크다. 이를 위해 영어강의의 양적, 질적 발전은 긴요하며, 실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교양영어'는 상당수 대학에서 영어강의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학의 영어강의 정책은 우려할 만하다. 영어강의가 투자 없이 무원칙하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대학생들에게 사교육으로 영어 실력을 늘리라고 압력을 가하는 꼴이다. 그 결과 영미에서 살아봤거나 특목고나 철저한 사교육 덕분에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춘 경우가 아닌 학생은 학원, 해외어학연수 등을 이용해 영어능력―주로 듣고 말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대학생활과 취업전선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되어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수준높은 외국어 텍스트를 읽으며 토론하고 고민하는 일에서 성취될 대학교육의 본모습은 그만 실종되고 만다.

영어 공용화론의 맹목과 허구성

경쟁지상주의 담론의 핵심에 자리잡은 영어능력에 대한 강조는 어느새 질적 변화를 일으켜 아예 지적 활동과 사회생활의 수단을 우리말에서 영어로 바꾸려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은 그것을 상징하는 담론이다. 그는 한국의 고등교육 기관들이 지식을 창조하지 못하며 남들이 생산한 지식을 소비만 한다는 어느 미국 학자의 발언을 논거로 들면서, 영어공용화가 한국의 학문과 문화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한다.(《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복거일의 영어 공용론》, 삼성경제연구소 2003, 46면) 그러나 한국의 고등교육기관들이 지식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현실을 정확히 짚은 것은 결코 아닐뿐더러, 한국 대학의 질적 도약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영어공용화 하나로 달성 가능한 양 주장하는 것은 도무지 진지하다고 보기 어렵다.

사실 우리는 외국어를 공용어(公用語)로 강요당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해방 후 3년간 미군정의 공용어는 영어였고, 일제강점기도 처음부터 일본어가 공용어였으며 나중에는 일상생활에서마저 일본어 사용이 강제되었다. 소설가 김동인이 외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조선인은 적어도 중등학교 이상 학력이고 일본어를 잘 하는 그들은 외국문물을 우수한 일본어 번역으로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우리말 번역을 하려는 노력은 무익하다고 쓴 데에서 그 시절의 실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번역문학〉, 《매일신보》 1935년 8월 31일)

식민지시대의 조선어말살정책과 오늘의 영어 광풍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좀 우스꽝스럽지만, 언어의 선택이 인간 생활 전반과 직결된 총체적인 사안이라는 상식을 환기시켜 준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는 것이지만, 한국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택하는 것은 우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어 공용화는 강남의 중상류층이 상징하는 경제적, 문화적 역량이 전국민에게 주어져야 현실적 가능성을 입에 올릴 수 있는 일일 터인데, 이는 자유주의자 복거일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무계급사회의 지상낙원을 당장 건설하겠다는 이데올로기적 선전과 흡사하다. 이 점을 의식한 탓인지 복거일은 영어 공용화를 반대하면 오히려 많은 국민들을 영어의 혜택에서 소외시키는 계급적 자세가 된다는 묘한 논리를 펴기도 한다. 어쨌든 요즘 일부 상위권 대학의 영어강의 정책은 그의 입론을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셈이라는 점에서 착잡하기 짝이 없다. 

세계화에 대응하는 문화주체성 세워야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는 명확한 목표 설정과 그것을 위한 조건을 제대로 갖춰가며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대학에서 꼭 거쳐야 할 지적 훈련을 제한된 영어구사력 향상을 위해 속절없이 희생할 위험이 크다. 영어강의 도입의 당위성이 큰 영어영문학과에서도 영어강의로만 수업을 편성하면 많은 문제가 따를진대, 학생의 전반적 수준이나 학생간의 편차, 전공 분야의 특수성을 막론하고 영어강의만이 살길인양 밀어붙이는 일만큼은 재고되어야 한다. 충분한 준비와 투자가 없이 영어로 수업을 한다면, 학생들은 영어도 늘지 않고 수업 내용도 못 따라가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또 일정 수준 이상의 고급 외국어독해력 향상은 수업이 우리말로 진행될 때 종종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경험적으로 입증될뿐더러 상식적으로도 쉽게 납득이 간다.

영어의 문제는 단순히 외국어 습득의 문제가 아니다. 영어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가 장기적으로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이냐는 전망과 연결된 심각한 사회적 쟁점이다. 명심할 일은 세계화와 개방이라는 대세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도 우리 나름의 사회적 통합을 유지하면서 우리 역사에 뿌리박은 학문과 문화를 건설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비이성적 영어열풍은 어떤 성격의 세계화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며 사회적 갈등만을 심화시킬 것이다. 세계화와 공동체의 주체성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


이 글의 일부는 필자가 《안과밖: 영미문학연구》(2007년 상반기, 창비)에 게재한 시평 〈대학의 영어강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내용을 가져온 것임을 밝힌다 - 필자.

2007.7.10 ⓒ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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