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마스크를 쓰고 연명하는 고교평준화  
교육부와 일부 대학의 입시 논란

김종엽 | 한신대 교수

2008년 대학입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서울대가 내신 1, 2등급을 동점처리하겠다고 나설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큰 논란은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된 것은 서울대 입시안이 문제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서울대가 입시안을 내던 시기에 더 핵심적인 논란거리가 서울대 장기발전연구회의 도발로 시작된 3불정책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 들어 이화여대가 아예 4등급까지 동점처리하겠다는 대담한 입시안을 내걸자 논란은 불가피해졌다. 즉각 교육부가 돈을 무기로 대학을 제어하려 했고 그게 잘 안 먹히자 대통령까지 나섰다. 그 참에 정부는 현재 대학이 수용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요구를 했다. 즉 내신등급을 입시에 제대로 반영하는 것에 더해 실질반영률 자체를 현행보다 크게 끌어올리라는 것이다. 당연히 대학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거의 한달 내내 공방이 계속된 셈인데, 그래봐야 결국 적당한 선에서 봉합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이런 문제에 갈팡질팡해온 교육부에 별다른 정책수단이 남아 있지 않고, 대학들로서도 확전보다는 정권교체를 기다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2008년 입시 논란의 이면

내신 논란은 겉보기에는 대학과 교육당국의 싸움인 듯하지만, 그 본질은 명문대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 자체, 즉 고교간 학력차가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보수언론이 의도하는 의제설정 방식을 따른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명문대측이 명백한 사실을 수용하는 지적 정직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정부와 몇몇 교육단체들은 존재하는 차이를 알면서도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양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선동은 내신 4, 5등급이면서 수능 1등급인 학생을 제도의 가련한 희생양으로 묘사한 최근의 보도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보수세력의 논변에 대항하기 위해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런 논변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로 고교간 학력차는 심각하며, 그것이 곧 고교 평준화체제가 해체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의 고등학교는 자립형사립고, 외국어고, 과학고, 국제고라는 일류고등학교와 그 나머지 일반고라는 이류고등학교로 이원화되었다. 종종 교실붕괴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나는 외고나 과고에 교실붕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교실붕괴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변화의 결과인 것 못지않게 이원화된 고교체제의 산물이기도 하다.

특목고가 늘어나면 일류고도 늘어날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전히 고교 평준화체제가 존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특수목적고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소수의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통계는 이미 그렇지 않음을 입증한다. 1973년 당시 세칭 '일류고'(서울의 6개 명문고와 시도별 대표 공립학교)의 한 학년 학생수는 10,800명으로 당시 같은 연령대 인구의 1.3%였다. 2006년 과학고, 외국어고, 국제고, 자립형사립고 학생수는 9,229명으로 같은 연령대 인구의 1.5%로 이미 비평준화 시절의 수준을 상회한다.

그런데도 평준화를 해체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이른바 비평준화 시기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교육경쟁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에 현재 규모의 일류고가 여전히 모자란다고 여겨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규모가 충분히 늘어난다면 일류고-이류고 체제가 일류고-이류고-삼류고 체제로 확장될 뿐, 일류고가 늘지는 않을 것이다. 일류고는 그 자체가 일정한 희소성을 통해서 정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준화체제의 사망선고?

되돌아보면 평준화체제는 포괄 범위를 넓혀오긴 했어도 동시에 계속되는 침식을 겪으면서 제 모습을 잃어왔다. 전두환정권의 사교육 금지조치는 예체능계 과외조차 막을 수는 없다는 논리에서 시작하여 가난한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으로 나아갔고, 입시학원이 보습학원으로 이름으로 확장되다가 종래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위헌결정으로 완전히 무너졌는데, 평준화체제 또한 이와 유사한 경로를 겪었다.

실업계와 예체능계를 위해서 만들어진 특목고가 점차 '영재'라는 미심쩍은 단어를 매개로 과학고니 외국어고니 하는 엘리뜨학교로 발돋움했고 그것들이 이제 체제 자체를 망가뜨려버렸다. 남은 것은 명실상부한 엘리뜨학교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치사한' 내신제도 하나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내신실질반영률이 특목고에 부담스러운 그만큼만 우리의 평준화체제는 가늘게 숨을 쉬며 연명하고 있는 것이며, 그 내신을 무력화하는 것은 평준화체제로부터 산소마스크를 떼어내고 사망진단서를 발부하는 일이 될 것이다.

형식적 평준화를 넘어 실질적 평준화로

이런 사태에 대해 뭐라고 해야 할까? 최초에 평준화가 도입되었을 때, 고교입시의 부담이 사라진 동시에, 전국의 웬만한 고등학교들은 자신들도 좋은 학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경쟁의 강도는 전반적으로 완화된 동시에 전국의 고등학교들은 새로운 조건 속에서 생기있는 긴장감으로 가지고 경쟁에 참여했다. 이렇듯 일류고라는 특권적 교육재화가 제거된 다음 우리가 목도한 것은 평등주의의 퇴영성이 아니라 약동하는 생기였다. 오늘날 평준화체제가 엘리뜨학교의 발목만 잡고 있는 퇴영적인 제도인 양 비치게 된 것은 평준화의 내적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평준화가 엘리뜨학교의 존재로 인해 빈사상태에 이를 정도로 해체된 상태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평준화를 깨뜨린 이 힘이 어디로 향할지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52:1의 입학경쟁률을 기록한 청심국제중학교이다. 막고자 하는 어떤 사회세력이 없다면 청심국제중 같은 학교가 열개 스무개로 불어나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고교 평준화와 대학교육의 팽창을 불러온 평등주의적 열망이 스스로 이룩한 평등주의적 교육체제를 허물어버리는 불쾌하며 역설적인 순환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싫다면, 아직 고교평준화가 가는 숨을 쉬고 있는 지금, 외국어고와 과학고와 국제고가 여전히 외국어, 과학, 국제라는 법적 설립목적으로부터 비롯하는 불편한 이름을 떨치지 못한 지금, 특권적 교육재화를 해체하는 일을 시작해야 하며, 이제까지의 형식적인 고교평준화 이상의 실질적 평준화를 이룩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2007.7.3 ⓒ 김종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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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이종태 | 한국교육연구소 소장

올봄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교육 관련 쟁점은 단연 대입정책을 둘러싼 이른바 3불정책 논란이다. 대입본고사와 고교등급제 그리고 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정책은 비록 정부가 명명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대입 선발과정에서 움직일 수 없는 원칙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그런데도 일부 대학의 입시관계자와 사립대 총장들이 불을 붙이고 여기에 일부 언론들이 기름 붓고 부채질을 하면서 급기야 대통령과 부총리까지 나서서 불을 끄는, 볼썽사나운 소모전이 전개되고 있다.

3불정책의 정당성과 한계, 그리고 그 대안 등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제시했기에 군더더기 의견을 덧붙이는 일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대신 3불논란의 그늘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사실상 소모적 논란의 연료를 제공하고 있는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 문제를 거론하려고 한다.   

특목고, 대학-언론-중산층의 교육카르텔

본고사 실시나 고교등급제 도입 주장의 저변에는 특목고나 비평준화 지역 명문고 출신 학생들에게 더 유리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대학과 언론, 우리 사회 중산층 간의 무언의 카르텔이 작용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은 비교적 단순해 보인다. 특목고 학생들은 이미 치열한 경쟁의 과정을 거쳐 우수한 자질을 지니고 있음이 입증되었으므로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대학과 사회 모두에게 유용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차마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특목고 출신 학생들의 가정배경이 탁월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고려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단순 논법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타당한 논거를 가지고 있을까?

우선, 특목고란 무엇인가부터 따져보자. 특목고는 1973년 고교 평준화정책의 시행과정에서 일부 학교의 설립목적상 특수성을 인정하여 신입생의 추첨배정 대신 자체 선발권을 인정받은 학교를 가리키는 말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특목고 제도는 해당 학교들에 대한 특혜시비로 얼마 가지 않아 폐지되고 실업계열에만 한정해 유지되었다.

일반계열 특목고의 제도화는 1980년 7·30 교육개혁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과외 금지와 대입본고사 폐지를 골자로 하는 이 조치 속에는 영재교육의 활성화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근거로 과학과 어학 분야의 영재를 기르기 위한 특목고 설립이 계획되었다. 이에 따라 1984년 과학고등학교가 설립되었고 이어 노골적인 중산층 선호 정책을 펼쳤던 6공화국 정부에 의해 1992년 외국어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국제고등학교는 5·31 교육개혁의 결과로 1998년에 처음 개교했다. 

허울뿐인 특목고 영재교육의 실체

특목고의 형성과 팽창 과정은 두가지 요소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졌다. 우선 평준화 도입 초기부터 예외적 조치를 통해서라도 차별적인 교육기회를 만들어내려는 욕구가 강하게 있었다. 이것이 특목고 도입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동력에 형태를 부여해주는 동시에 평준화 기조를 우회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영재교육’ 담론이었다.

따라서 특목고가 처음부터 가면이나 다름없던 법령상의 목적인 영재교육을 무시하고 그것의 진짜 목적인 성적 우수자 선발과 명문대학 진학에 몰두한 것은 예정된 행로였다. 당연히 특목고 학생 선발의 핵심 기준은 영재성 여부보다는 일반 교과성적이 된다. 외고의 경우 이런 문제는 특히 심한데, 왜냐하면 외고의 설립근거가 되는 ‘어학 영재’는 학문적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전형에서 중시되는 것은 경시대회와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이나 토플 등의 성적이며, 이런 성적을 보증하는 것은 치열한 선행학습 아니면 조기 유학이 될 뿐이다.

교육과정 운영은 더 가관이다. 국가교육과정으로 고시된 특목고의 교육과정부터 기본구조 자체가 영재교육과는 거리가 있을뿐더러, 가르치는 교사들도 대개는 영재교육에 필요한 소양과는 무관하게 임용되거나 충원된다. 입시 위주의 편법 운영도 만연되어 있다. 외고의 경우 보통 서너가지의 외국어과를 설치하고 있지만 대체로 학생수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일 뿐 주로 영어에만 목을 매고 있으며, 공식적 교육과정에 없는 국제반이나 자연계열 과목을 편성, 운영하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일반고와 같은 규모의 학급을 유지하는 외고와 달리 모두 공립인 과학고는 학급당 인원이 15명 안팎이어서 양호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현재 70% 정도의 학생들은 2학년만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고 있어 1학년의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을 빼면 정작 과학고 교육과정의 핵심인 전문과정은 절반도 이수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는 셈이고 따라서 막대한 국민세금만 낭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편협한 교육과정 운영으로 대학에서는 과학고 출신 학생들의 인문적 소양이 너무 부족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3불 폐지? 특목고 폐지!

결국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상이며 교육적 논란의 원인이 되고 있는 특목고의 실체는 그 법적 존재기반인 영재교육과는 사실상 무관하고, 단지 부모의 경제력과 문화적 역량을 바탕으로 교과성적에서 경쟁력을 지닌 학생들을 위한 특권적 놀이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3불정책 폐지 논란은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거나 한 배를 탄 사람들이 벌이는 한판 굿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우리 사회가 ‘3불 폐지’가 아니라 ‘특목고 폐지’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세가지이다. 첫째, 특목고의 존재는 교육과정에 노골적인 거짓말을 도입하고 있다. 특목고는 법령에 규정된 설립목적을 공공연하게 부정할 뿐 아니라 최근 일부 특목고에서 저질러진 내신 조작이나 SAT 부정시비에서 보듯이 비교육적인 파행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 되었다. 둘째, 특목고의 존재는 입시경쟁을 고등학교 단계에서 초등학교 단계로 끌어내림으로써 사회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망국적인 사교육비 경쟁을 끝없이 부추긴다. 

우물 안에서 벗어나 교육의 새판을 짜야

셋째, 특목고의 존재는 성적 경쟁에만 몰두하는 퇴행적인 교육방식을 강화시켜 지식기반사회 등 새로운 사회에 대비한 교육의 발전에 심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 이런 교육의 결과가 어떤지는 특목고를 나와 국내외 명문대학 진학에는 성공했지만 중도하차하거나 아무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많은 학생들의 사례가 이미 웅변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세칭 명문학교 입학이라는 우물 안의 성공을 위한 소모적 경쟁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의 도전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 교육의 새판 짜기가 필요하며, 이런 새판을 짜기 위한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가 병리적인 현행 특목고의 폐지라고 할 수 있다.

2007.04.24 ⓒ 이종태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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