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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8.5ⓒ 김태권
                                                   


 


연재를 마치며


저는 여름을 맞아 잠시 스위스 바젤에 나왔습니다. 에라스무스와 니체는 물론이고, 연금술의 대가 파라켈수스와 불로불사에 도달했다는 칼리오스트로 백작도 이곳을 거쳐 갔다나요. 좋은 곳이네요. 방값도 음식 값도 서울보다 싸요(환율 오르기 전에는 더 쌌다던데 강만수 장관 시절에… 다 아시죠?).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노동자들이 벌인 끈질긴 싸움 덕분에, 평범한 사람도 살기 좋은 도시가 됐다죠.

아무튼 걷거나 자전거 타고 다니기 좋은 아담한 동네입니다.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검은 피부의 잘생긴 청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그 8등신 청년의 ‘이기적 기럭지’에 감탄하던 중이었습니다(그런데 그 청년은 왜 저를 쳐다봤을까요?). 그는 제게 반갑게 웃어 보이더니, 제 사진기로 자기를 찍어 전자우편으로 보내달라더군요. 언제 보내줄 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마고 대답하고는(아차, 아직도 안 보냈군요), 짤막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출신이 어디냐 묻자, 그 미남청년은 차드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아, 차드. 차드에 대해 제가 뭘 알고 있을까요? 수단 곁에 있고 리비아 곁에 있고, 그리고 현재 정치상황이 복잡하다던데…… 아무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저는 순간적이나마 당황한 표정이었을 겁니다. 화제를 돌리려고, 나는 쥐트 코레아, 즉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답했습니다. 아, 코레아. 일본 곁에 있고 중국 곁에 있고 현재 분단 상황이죠. 음. 그래서 어쩌라고. 청년의 얼굴에도 0.5초 동안 당황한 빛이 역력했답니다.

그 당황한 표정에서 동질감을 느꼈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만화 <20세기 연대기>를 한해 동안 연재하면서, 사실 저는 20세기 남한사회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답니다. 신성한 민족사도 아니고 뉴라이트 식의 싱거운 농담은 더더군다나 아닌, 세계사의 맥락에서 본 한국사회를 말이죠. 필리핀이나 베트남·팔레스타인이나 이란과도 흡사하면서, 소련이나 동구권과도 비슷하고, 또 히틀러 당시의 독일이나 군부독재 치하의 라틴아메리카하고도 살짝 겹치는 그런 모습을, 저는 언뜻언뜻 보았습니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와서 장미 동산을 보고 울었다지요? 저도 이 만화를 그리며 그런 기분을 자주 느꼈어요. 독자 여러분도 느끼시기를 바랐습니다만, 제 깜냥이 부족해 뜻대로 됐을지는 모르겠네요.

날마다 마감에 늦는 저에게, 자객 대신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신 창비 J님의 ‘대인배스러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서울에 돌아가면 신세진 분들께 밥 한끼 사고, 연재에 빠졌던 해들의 이야기를 채워넣기로 할게요. 한해 동안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8.5ⓒ김태권
2009/08/05 200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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