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 베를린자유대학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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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디쎄이아》 12장에는 유명한 쎄이렌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이 통과할 뱃길 길목에 두 쎄이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 오디쎄우스는 밀랍을 손으로 이겨 뱃사람들의 귀를 막고, 자신의 손과 발을 돛대에 묶게 한다. 쎄이렌의 노랫소리에 유혹되지 않기 위해서다. 마침내 쎄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뱃사람들은 더 열심히 노를 젓는다. 오디쎄우스가 유혹에 넘어가려 하자 일행인 에우릴로코스와 페리메데스가 그를 더욱 세게 밧줄로 묶어서 일행은 결국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신화에서 힌트를 얻어 국제관계학에서 이른바 '결박 이론'이 나왔다. 자신의 손발을 묶어버림으로써 온건한 협상의 퇴로를 스스로 차단한다는 뜻이다.

전쟁의 발발도 '결박 이론'으로 해석 가능하다. 무력충돌은 언제나 무력의 사용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상대방이 계속 어깃장을 놓으면 우리 쪽에서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암시를 해도 상대가 그것을 진짜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저 협박용 발언이거나 강경한 수사에 불과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이때 우리 쪽에선 우리 의도가 그저 공허한 언사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강경한 메씨지를 발표하거나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1차 걸프전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자신의 결전 의지가 확실함을 보여주기 위해 수차례 공개적으로 쿠웨이트 해방을 단언했고 실제로 50만 이상의 미군병력을 걸프지역에 배치했다.

강경대응 선언에 뒤따르는 정치적 효과

이렇게 스스로 손발을 묶어버리는 행위엔 두가지 효과가 따른다. 우선 상대방에 대해 우리 쪽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 진정한 의도가 있음을 새삼 인식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행동이 자기 쪽에 대해서도 구속력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까지 호언장담해놓고 막상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경우 받게 될 공신력의 추락은 충돌 자체보다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청중 비용'이다. 국제적으로든 국내에 있어서든 자기가 한 말을 실제로 실천하지 않을 때 받게 될 타격을 뜻한다. 그러니 잠재적 '청중 비용'이 커질수록 공언이 공언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급격히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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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8 201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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