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국 /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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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는 병가지상사. 총선은 또다른 출발이다. 예상외의 패배를 당했지만 야권이 레이스를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더 큰 승부인 대선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총선 패배의 충격과 아픔은 그것이 대선 승리를 위한 약이 될 때 진정으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야권이 대선으로 허겁지겁 달려가기 전에 총선 패배의 원인부터 곰곰이 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수많은 변수와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을 다 논외로 하고 이번 총선에서 여야의 승패를 가른 단 하나의 요인만 꼽는다면 바로 리더십이다. 새누리당에는 박근혜가 있었고 민주통합당에는 박근혜가 없었다. 이것이 결정적 차이고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소다.

전쟁을 방불하는 선거를 이끌려면

선거는 목숨을 건 싸움이다. 큰 선거건 작은 선거건 후보와 리더는 여기에 모든 것을 건다. 한치의 빈틈도 허락되지 않고 한순간의 느슨함도 용납되지 않는다. 리더는 현장에서 선택하고 결단한다. 타이밍을 놓치느니 차라리 밥과 잠을 포기한다. 눈이 충혈되고 손이 붓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선거가 끝나면 거의 모든 후보들이 드러눕는다. 기가 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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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5 2012/04/25


김남근 / 변호사, 참여연대 부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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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선의 정치적 화두는 아무래도 이명박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으로 모아지고 있다. PD수첩 등 정부비판 언론이 탄압을 받고 많은 집회·시위 참가자들이 형사처벌을 받는 등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축되었고 용산참사에서 보이듯 공권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통치스타일로 인권이 크게 후퇴하였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진원은 비단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통계조작이 없었다면 2011년 사실상 5% 상승률에 달했던 물가대란, 2009~2011년 불과 2년 사이에 전셋값이 20~30%나 오른 전세대란, 1,000조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대란 등 민생대란이 이명박정부 심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근저에 깔려 있다. 게다가 비정규직 850만명, 실질실업자 400만명, 청년실업자 110만명 등의 통계가 보여주듯이 사회양극화의 극심화와 2030세대의 절망이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정권교체에 대한 절박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참여정부에 대한 '향수'로 그칠 것인가

국민들은 이명박정부에서 벌어진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남북관계의 경색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증대 등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치개혁과 남북관계 개선에 앞장섰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명박정부에 의하여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비하되었던 참여정부의 비서관, 보좌관 들과 관료들이 이명박 심판을 외치며 일제히 출격하는 모습에서는 남다른 각오를 읽을 수 있고 여기에는 국민적 공감대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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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5 2012/02/15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을 바라보며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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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이다. 민주통합당의 대표선출 선거인단에 참여하는 시민수가 65만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합만 있고 혁신은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이변이 일어났을까? 반은 의심에, 반은 놀라움에 던지는 질문이다. 우선은 한국노총, YMCA, 정봉주 팬클럽, 노무현재단, 백만 민란, FTA무효화 국민행동, 세금혁명당 등의 사회단체들과 새로운 대항미디어 '나꼼수' 등이 적극 개입한 결과다. 정치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그 힘을 깨달은 일반인의 자발적 참여도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별 시민의 자유로운 참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첫번째 요건이 표현과 결사의 자유인 점을 감안하면 '조직'의 참여는 해가 아니라 득이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이른바 강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다.

다양한 결사체들의 존재와 참여는 민주주의에 도움이 된다. 이 사실은 토크빌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바다. 조직 네트워크가 옅어지고 개인으로 고립되면 참여가 줄어들며, 그 질도 수동적 참여로 떨어진다. 그 결과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는 개인민주주의(personal democracy)로 전락하고 만다. 긴즈버그의 지적이다. 개인민주주의에서는 이슈그룹이 시민 없는 시민단체로서 미디어와 의회를 활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과잉표출하게 된다. 이때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여론조사다. 한 예를 살펴보자. 1947년 미국에서는 뉴딜체제의 핵심법안인 노동관계법 개정이 이슈로 떠올랐다. 파업권의 제한 등을 담은 개정법(Taft-Hartley Act)으로 손해를 보는 노동조합이 낙선운동 위협을 하며 강력히 저항했다. 의회에서는 머뭇거렸지만, 이때 돌파구를 열어준 것이 여론조사였다. 이 법에 대한 찬반을 다음 선거의 준거로 삼지 않겠다는 여론이 다수를 차지하는 조사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그러자 의원들이 용기를 내 법안처리에 나서 이 법을 통과시켰다. 여론조사를 통해, 공통의 이해를 갖는 노동자가 아니라 고립된 개인의 의사로 파편화된 것이다. 이런 위험성을 갖는 여론조사가 우리 정치에서 극성을 부렸던 것을 기억하면 조직의 참여는 대단히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기성 정당의 대담한 정치기획이 필요한 때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정당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고 단언했다. 정당의 중요성을 표현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일차적 이해에 머무는 것이다. 사실상 정당의 이끌어 가는(leading) 역할을 지적하는 말로 읽는 것이 좀더 깊이있는 해석일 것이다. 정당은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고 정립하는 기능을 한다. 동시에 대안을 모색하고 선택해서 간명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계도기능도 해야 한다. 따라서 정당은 대중을 추수하면서 동시에 끌고 가야 하는 모순적인 이중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셈이다. 그간 우리 정당은 대중을 계도하는 기획에서 매우 무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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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1 201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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