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무현정부가 추진했던 한미FTA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단어는 역시 '업그레이드'가 아닌가 한다. 이미 2006년 2월 논의가 시작되던 당시 한 외교통상부 관료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거니와, 이후 고(故) 노무현 대통령도 또 주변의 인사들도 반복해서 사용한 말이었다. 말인즉슨, 한미FTA는 일반적인 무역협정처럼 협정국과의 교역에 있어서 상대적 이익을 바라고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경제체제를 개조, 즉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좀 엉뚱한 용어로 표현된 이 말을 달리 풀이하면, 한국의 정치경제모델을 미국의 그것으로 통일 혹은 통합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즉 한미FTA는 단순한 통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제도에 있어서의 '국가개조론'에 가깝다. 여기에서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미FTA에 묻어들어 있는 안보전략의 측면이다. 주지하다시피 9․11테러 이후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라는 다자주의 무역체제를 뒤로 돌리고 FTA라는 양자 전략으로 전환한 데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전략의 의미가 대단히 컸다.

한미FTA 찬반 논쟁의 맹점

2000년대 이후 미국과 FTA를 맺는다는 것은 곧 그 나라의 산업구조가 미국과 유기적으로 통합된다는 것, 나아가 투자 및 영리 활동을 둘러싼 제반의 제도적 장치가 미국의 '글로벌 스탠다드'로 통일된다는 것, 곧 미국경제와 형식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한 동아리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문보기

2011/11/02 2011/11/02


조효제 / 베를린자유대학 초빙교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 글에서는 시사현안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필자가 해외에서 머물며 많이 생각했던 점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있으면 흔히 외국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경향이 있다. 해외 사례를 찾아 우리와 비교하는 신문특집들이 언론의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이때 '외국'이라 하면 소위 선진국 몇 나라에 국한되기 마련이다. 해외의 사조와 동향을 잘 살피는 일 자체는 지성의 상징이자 진보의 특징이다. 정책의 국제적인 상호학습 역시 일반적인 추세가 되었다. 그런데 외국의 동향을 면밀하게 주시하는 정도를 넘어 그것을 우리의 잣대로 삼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태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외국의 사조에 반응할 수 있는 어떤 적정선을 제안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과 함께 외국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 잘 알려진 예로 오바마 미 대통령의 한국 교육 칭찬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토니 블레어가 총리 시절에 영국의 복지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본인 부담으로 개인연금을 준비하는 아시아를 배우자고 한 적이 있었다. 복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이색적인 모델이 그렇게도 부러웠던 모양이다. 중국 대학에서 가르치는 어느 서양 학자가 동아시아의 이주노동자 정책이 서구국가들보다 낫다고 두둔한 적이 있다. 단기초청제도와 엄격한 통제를 통해 노동자들의 기대치를 높이지 않고, 장기적으로 시민권에 따르는 복잡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문보기

2011/02/09 2011/02/09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사진: 최태욱
많은 이들이 세계화의 급격한 진행을 언급하며 21세기는 드디어 하나의 지구촌이 완성될 시대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지구는 아직도 넓고 인간의 삶의 방식은 여전히 다양하다. 가끔 TV에서는 지금까지도 문명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는 말 그대로 '토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릴 때 역사 교과서에서나 읽고 상상하던 원시인들의 삶의 모습이 거기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당장 비행기를 타고 몇시간만 이동하면 수천년 전의 인간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내가 자주 보는 또다른 성격의 TV 프로그램은 현재 KBS에서 방영중인 <동행>과 같은 민생 다큐멘터리다. 거기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온갖 고된 노동을 다 하지만 언제나 가난하고 언제나 고달픈 지금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슬프고 답답하고 가슴 아프다가 결국엔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 대해 화가 나곤 한다. 어느날은 문득 유럽의 복지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이같은 한국 다큐멘터리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혹시 그들은 우리 서민들의 삶을 보며 내가 TV에서 현시대의 토인을 볼 때 가졌던 신기하기까지 한 그 아스라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냉혹한 시장논리, 무너지는 삶의 존엄

내가 토인들의 원시적 삶에 놀랐듯이 아마 그들은 한국인들의 '시장적' 삶에 놀랄 듯싶다. 화면을 통해 시장의 약자는 낙오될 수밖에 없는 냉혹한 한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선조도 저렇게 살았다는 사실에 새삼 경악할 것 같다. 돈이 없으면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고, 심하게 아플지라도 병원 가길 두려워하며, 살 집 걱정에 늘 불안해하는 한국 서민들의 현재 모습이 그들 눈에는 그저 아득한 옛날 일로 비칠 것이다. 그들 중 동정심 많은 이들은 필경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어떻게 그리 가난할 수밖에 없는가! 저렇게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사는데도 왜 저들은 떳떳하지 못하고 언제나 누군가에게 굽실거리고 비굴해야만 하는가! 분명 저들의 잘못이 아니지 않는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울 것이다.

전문보기

2009/12/23 2009/12/23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