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 한신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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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오래전 일들을 자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한미FTA 반대 집회에서 발생한 종로경찰서장 폭행사건도 그런 것 중 하나다. 트위터로 이 소식을 보았을 때만 해도 기시감은 없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대대적으로 떠들어대고 "경찰서장이 매맞는 나라, 누가 집권한들 이끌 수 있겠나"는 사설을 남발하자 정원식 총리서리에 대한 대학생들의 밀가루 투척사건이 또렷이 떠올랐다. 벌써 20여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지금 한미FTA 반대 투쟁에 참여하는 청년층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만큼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1987년 6월항쟁에 이은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후보 단일화 실패로 민주화진영은 정권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88년 총선으로 야당들은 다수의석을 차지했고 이를 기반으로 제5공화국 청산을 시도하는 등 집권당을 수세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노태우정권은 차기정권을 미끼로 김영삼과 김종필을 끌어들여 1990년초 3당합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을 이룩했다. 이를 통해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이 만들어졌는데, 그렇게 해서 다수당이 된 집권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반대파를 탄압했다. 1991년 봄이 되자 이런 공안통치에 대한 저항이 대학생층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열렬한 투쟁은 경찰에 의해 강경하게 진압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대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 분노한 대학생들의 분신자살이 이어졌다.

대중의 분노 누르려는 보수언론의 여론몰이

며칠 상간으로 대학생들이 전국에서 죽어가던 삼엄한 상황에서 당시 총리로 임명된 정원식은 자신이 출강하던 한국외대에 마지막 강의를 하러 갔다. 그리고 정권에 분노한 대학생들에게 밀가루와 계란 세례를 받게 된다. 다음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몰골이 된 총리서리의 사진을 게재하고 대학생들을 노교수를 거리낌 없이 모욕하는 패륜아로 몰아갔는데, 이런 여론몰이가 대학가에 타오르던 거센 투쟁의 열기를 누르고 보수적 지배를 공고히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3당합당으로  형성된 정당체제가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그늘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원식 사건은 특정한 사건과 그것에 이은 미디어적 증폭이 얼마나 큰 구조적 영향력을 갖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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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30 201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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